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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we will not surrender until free energy will be enabled all over the world, to power planes, cars, ships and trains.
Free energy will help the poor to become independent of needing expensive fuels.
So all in all Free energy will bring far more peace to the world than any other invention has already brought to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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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r's Kapanadze forum, FE builds circuits and comments

Started by AlienGrey, February 03, 2019, 05:22:13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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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 선악의 저편 서문 2 / 삶은 관점주의다!
https://www.youtube.com/watch?v=FmuKbHlGBZU&t=609s

진리는 거꾸로 물구나무 서있고,
The truth is standing upside down,


인혜가 공중으로 한 길이나 거꾸로 올라갔다가, 한참 후에 천천히 거꾸로 떨어져 머리가 땅에 박혀 말뚝처럼 우뚝 섰다.
惠倒迸於空高一丈許 良久徐徐倒下 頭卓地 屹然如植橛







밀본법사가 요사한 귀신을 물리치다
[ 密本摧邪 ]

삼국유사 제5권 신주 제6(三國遺事 卷第五 神呪 第六)

선덕왕(善德王) 덕만(德曼)이 병에 걸려 오랫동안 낫지 않자, 흥륜사(興輪寺)의 승려 법척(法惕)이 명을 받고 병을 치료했지만 오래도록 효과가 없었다. 이때 밀본법사(密本法師)가 덕행으로 나라에 소문이 났는데, 신하들이 법척을 밀본법사로 바꾸자고 청하였다. 그래서 왕이 명을 내려 밀본법사를 궁으로 맞아들였다. 밀본이 침실 밖에서 『약사경(藥師經)』 읽기를 마쳤다. 그때, 가지고 온 육환장(六環杖, 고리가 여섯 개인 지팡이)이 침실로 날아 들어가 늙은 여우 한 마리와 중 법척을 찔러 뜰 아래로 거꾸로 내던졌고, 왕의 병도 곧 나았다. 이때 밀본의 이마 위로 오색의 신비로운 빛이 뻗쳤는데, 보는 사람들마다 모두 놀랐다.

善德王德曼 遘疾彌留 有興輪寺僧法惕 應詔侍疾 久而無效 時有密本法師 以德行聞於國 左右請代之 王詔迎入內 本在宸仗外 讀藥師經 卷軸纔周 所持六環飛入寢內 刺一老狐與法惕 倒擲庭下 王疾乃瘳 時本頂上發五色神光 覩者皆驚

또 승상 김양도(金良圖)가 어렸을 때 갑자기 입이 붙고 몸이 굳어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였다. 그런데 김양도가 매번 볼 때마다 큰 귀신 하나가 작은 귀신들을 거느리고 와서는 상 위에 있는 음식을 다 맛보는 것이었다. 무당이 와서 제사를 지내면 귀신들이 모여들어서 다투어 모욕하였다. 김양도가 물러가라고 명령하고 싶었지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법류사(法流寺)의 승려를 청해 와서 불경을 읽게 하였는데, 큰 귀신이 작은 귀신에게 명하여 쇠망치로 중의 머리를 때리자, 그대로 넘어져서 피를 토하고 죽었다.

며칠 뒤 사람을 보내 밀본법사를 맞아오도록 하였다. 심부름 간 사람이 돌아와서 말하였다.
"밀본법사께서 우리 청을 받아들여 오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귀신들이 이 말을 듣고 모두 다 얼굴빛이 변하였다. 작은 귀신이 말하였다.
"법사가 오면 불리하니, 피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나 큰 귀신은 거만을 부리며 태연하게 말하였다.
"무슨 해로움이 있겠느냐?"

그런데 잠시 뒤에 사방에서 대력신(大力神)이 나타났는데, 모두들 쇠 갑옷과 긴 창으로 무장하고 와서 귀신들을 잡아 묶어서 갔다. 그리고 수많은 천신(天神)들이 둘러서서 기다렸다. 잠시 후 밀본이 이르렀는데, 불경을 펼치기도 전에 김양도의 병은 다 나아서 말도 하고 움직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 동안의 일을 자세히 설명하였다.

양도는 이러한 일을 겪은 후 불교를 독실하게 믿어 평생 게을리하지 않았다. 흥륜사 법당의 주불인 미륵존상과 좌우 보살을 소상으로 만들고 아울러 법당 안을 금색으로 벽화를 가득 그렸다.

又丞相金良圖爲阿孩時 忽口噤體硬 不言不遂 每見一大鬼率群小鬼來家中 凡有盤肴 皆啖嘗之 巫覡來祭 則群聚而爭侮之 圖雖欲命撤 而口不能言 家親請法流寺僧亡名來轉經 大鬼命小鬼以鑯槌打僧頭 仆地嘔血而死
隔數日 遣使邀本 使還言 本法師受我請將來矣 衆鬼聞之皆失色 小鬼曰 法師至 將不利 避之何幸 大鬼侮慢自若曰 何害之有 俄而有四方大力神 皆屬金甲長戟來 捉群鬼而縛去 次有無數天神 環拱而待 須臾本至 不待開經 其疾乃治 語通身解 具說件事
良圖因此篤信釋氏 一生無怠 塑成興輪寺吳堂主彌陀尊像左右菩薩 幷滿金畵其堂

밀본법사는 일찍이 금곡사(金谷寺)에 머문 적이 있다.
또 김유신은 일찍이 어떤 늙은 거사(밀본법사)와 친하게 지냈는데, 세상 사람들은 그가 누구인지 몰랐다. 그때 유신 공의 친척인 수천(秀天)이 오랫동안 나쁜 병을 앓고 있었다. 공이 거사를 보내 진찰하게 하였는데, 때마침 수천의 친구 인혜사(因惠師)가 중악(中岳)에서 찾아왔다가 거사를 보고 모욕을 주며 말하였다.

"그대의 형상과 모습을 보니 간사하고 아첨하는 사람인데, 어찌 남의 병을 고칠 수 있겠는가?"
그러자 거사가 말하였다.
"나는 김 공의 명을 받고 어쩔 수 없이 왔을 뿐이오."
인혜사가 말하였다.
"그대는 내 신통력을 보아라."

그리고 향로를 받들어 향을 피우고 주문을 외었더니, 잠시 뒤에 오색 구름이 그의 머리 위를 돌았고 하늘의 꽃이 흩어져 떨어졌다. 그러자 거사가 말하였다.
"스님의 신통력은 불가사의합니다. 제자에게도 졸렬한 재주가 있는데 시험해 보고자 합니다. 스님께서는 잠시 제 앞에 서 계십시오."

인혜는 그의 말대로 하였다. 거사가 손가락을 튀기어 소리를 내자, 인혜가 공중으로 한 길이나 거꾸로 올라갔다가, 한참 후에 천천히 거꾸로 떨어져 머리가 땅에 박혀 말뚝처럼 우뚝 섰다. 옆에 있던 사람들이 밀고 당겨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거사가 그대로 가버렸기 때문에 인혜는 여전히 거꾸로 박힌 채 새벽까지 있어야 했다. 다음날 수천이 사람을 보내 김유신 공에게 이 일을 알렸고, 공이 거사에게 가서 구해주도록 해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이 일로 인해 인혜는 다시는 재주를 자랑하지 않았다.

다음과 같이 찬미한다.

붉은색 자주색 분분히 주색(朱色)을 어지럽히니
아, 물고기 눈도 구슬이라고 어리석은 이 속이는구나.
거사가 가벼이 손가락을 튀기지 않았다면,
얼마나 상자 속에 가짜 옥을 담았으려나.

本嘗住金谷寺
又金庾信嘗與一老居士交厚 世人不知其何人 于時公之戚秀天久染惡疾 公遣居士診衛 適有秀天之舊名因惠師者 自中岳來訪之 見居士而慢侮之曰 相汝形儀 邪佞人也 何得理人之疾 居士曰 我受金公命 不獲已爾 惠曰 汝見我神通 乃奉爐呪香 俄頃五色雲旋遶頂上 天花散落 士曰 和尙通力 不可思議 弟子亦有拙技 請試之 願師乍立於前 惠從之 士彈指一聲 惠倒迸於空高一丈許 良久徐徐倒下 頭卓地 屹然如植橛 旁人推挽之不動 士出去 惠猶倒卓達曙 明日秀天使扣於金公 公遣居士往救乃解 因惠不復賣技
讚曰 紅紫紛紛幾亂朱 堪嗟魚目誑愚夫 不因居士輕彈指 多少巾箱襲碔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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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so sprach Zarathustra: Ein Buch für Alle und Keinen

Zarathustra's Vorrede.
http://www.nietzschesource.org/#eKGWB/Za-I

Als Zarathustra dreissig Jahr alt war, verliess er seine Heimat und den See seiner Heimat und gieng in das Gebirge. Hier genoss er seines Geistes und seiner Einsamkeit und wurde dessen zehn Jahre nicht müde. Endlich aber verwandelte sich sein Herz, — und eines Morgens stand er mit der Morgenröthe auf, trat vor die Sonne hin und sprach zu ihr also:
,,Du grosses Gestirn! Was wäre dein Glück, wenn du nicht Die hättest, welchen du leuchtest!
Zehn Jahre kamst du hier herauf zu meiner Höhle: du würdest deines Lichtes und dieses Weges satt geworden sein, ohne mich, meinen Adler und meine Schlange.
Aber wir warteten deiner an jedem Morgen, nahmen dir deinen Überfluss ab und segneten dich dafür.
Siehe! Ich bin meiner Weisheit überdrüssig, wie die Biene, die des Honigs zu viel gesammelt hat, ich bedarf der Hände, die sich ausstrecken.
Ich möchte verschenken und austheilen, bis die Weisen unter den Menschen wieder einmal ihrer Thorheit und die Armen wieder einmal ihres Reichthums froh geworden sind.
Dazu muss ich in die Tiefe steigen: wie du des Abends thust, wenn du hinter das Meer gehst und noch der Unterwelt Licht bringst, du überreiches Gestirn!
Ich muss, gleich dir, untergehen, wie die Menschen es nennen, zu denen ich hinab will.
So segne mich denn, du ruhiges Auge, das ohne Neid auch ein allzugrosses Glück sehen kann!
Segne den Becher, welcher überfliessen will, dass das Wasser golden aus ihm fliesse und überallhin den Abglanz deiner Wonne trage!
Siehe! Dieser Becher will wieder leer werden, und Zarathustra will wieder Mensch werden."
— Also begann Zarathustra's Untergang.




"이름이 차라투스트라라고 했던가. 그러나 그도 변했군. 그대는 자신의 타고 남은 재를 산으로 날라 갔지. 오늘은 그대의 불덩이를 골짜기로 날아 가려고 하는가? 그런데 이제 잠든 사람들에게로 가서 뭘 하자는 건가. 바닷속에 있는 듯 고독 속에서 살았고, 그 바다가 그대를 품어주었지. 그런데도 그대는 뭍에 오르려 하는가."
차라투스트라가 대답했다. "인간들을 사랑하기 때문이오."
"하지만 이제 나는 신을 사랑하네. 인간에 대한 사랑은 나를 파멸시킬테지."
차라투스트라가 대답했다. "사랑에 대해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소. 다만 인간들에게 선물을 주고 싶다오."
"인간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말게. 차라리 그들로부터 얼마간을 빼앗아 그것을 그들과 나누어 가지도록 하게. 그래야 인간에게 더없이 큰 도움이 될 것이네. 그들로 하여금 애걸하도록 하게."
차라투스트라가 대답했다. "자선을 베풀고 싶지는 않소, 나는 그렇게 할 만큼 가난하지는 않다오."
"그들은 은둔자를 불신하며 우리가 선물을 주려고 왔다는 것을 믿지 않네. 왜 그대는 나처럼 곰들 속의 한 마리 곰, 새들 속의 한 마리 새로 머물고자 하지 않는가. "
차라투스트라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저 늙은 성자는 숲 속에 있어서 신이 죽었다는 소식조차 듣지 못했구나."




니체가 이집트 하토르신전 지하실에 태양신전/아펩신전의 존재를 어떻게 알고 있었나가 궁금하겠지? ;D ;D ;D ;D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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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thew 27 [NASB]
"ELI, ELI, LAMA SABACHTHANI?"

Psalms 22 [NASB]
My God, my God, why have You forsaken me? Far from my deliverance are the words of my groaning.
O my God, I cry by day, but You do not answer; And by night, but I have no rest.



빛이 어둠의 아버지를 부른다.
다윗의 말대로 낮에 어둠을 부르짖으면 어둠이 대답하겠는가.
또한 빛이 밤에 어둠을 부르짖을 수 있겠는가.
빛이 어둠을 부르려면 어둠이 되어야 한다.
역으로 어둠이 빛이되든가.
이것이 어둠이 된 예수의 죽음이다.



1851년 니체는 소년학교에 출석했고 그 다음에는 그가 구스타브 크루크와 빌헬름 핀터와 친구가 되었던 곳인 사립학교에 다녔다. 두 친구는 모두 명망있는 가문 출신이었다. 1854년 그는 나움부르크에 있는 돔 김나지움에 다니기 시작했으나, 그의 특출한 재능은 음악과 언어에서 발휘되기 시작했다. 그 후 국제적으로 유명한 슐포르타에 동료들처럼 입학했으며, 그곳에서 그는 그의 학업을 1858년부터 1864년까지 계속했다. 그는 파울 도이쎈, 칼 폰 게르도르프와 친구가 되었다. 또한 그는 시를 짓고 음악을 작곡하는 데 시간을 들였다. 슐포르타에서 니체는 특히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 대해 배웠다. 그 동안에 그는 살면서 처음으로, 조그만 시골 마을의 기독교적인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가족의 삶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었다.

1864년 졸업을 한 후에 니체는 신학과 고대 철학을 본 대학에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짧은 기간 동안, 그는 도이쎈과 함께 대학생 학우회(Burschenschaft Frankonia)의 구성원이 되었다. 한 학기 후에 어머니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그는 신학 공부를 중단했고, 신앙도 상실하였다.[5] 그것은 아마도 1835~1836년에 다비드 슈트라우스가 쓴 《예수의 생애》(Das Leben Jesus)란 책에서 그가 담당한 부분을 읽어나가던 중에, 책의 내용이 젊은 니체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6]

철학공부와 군복무
1865년에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글들을 알게 되었고, 그는 1866년 프리드리히 알베르트 랑게의 책, 《유물론의 역사와 그 현재적 의미에 대한 비판》(Geschichte des Materialismus und Kritik seiner Bedeutung in der Gegenwart)을 읽었다. 그는 두 사람의 저서 모두와 자극적인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그들의 저서는 니체가 그의 지평을, 철학을 넘어서는 영역까지 확장하도록 격려했으며, 그의 학업을 지속하게 하는 자극제가 되었다. 1867년 니체는 군에 자원하여, 1867년 10월 군에 입대하였다. 그는 철학과 군복무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도중, 한 꿈을 꾸게 된다. 내용은 어떤 시집을 읽었다는 것인데, 프리드리히 니체는 그것을 기억해내 전쟁과 싸움을 잊고 학문에 매진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어 철학공부에 매진하게 된다. 그는 나움부르크에서 프로이센 포병으로 한 해 동안 복무하였다.[7] 그러나 1868년 3월에 그는 말을 타다가 사고를 당해서, 가슴을 심하게 다쳐 후송되었으나 군복무를 지속할 수 없었다. 그는 군복무를 5년 이상 하였고, 높은 직위에도 올랐었다.[8]
https://ko.wikipedia.org/wiki/%ED%94%84%EB%A6%AC%EB%93%9C%EB%A6%AC%ED%9E%88_%EB%8B%88%EC%B2%B4




말에서 떨어진 사건이 사울이 바울로 개종하는 극적요소이듯 니체에게도 극적 사건이다.
그래서 꿈에 특정 시집을 읽었다든가, 1835~1836년에 다비드 슈트라우스가 쓴 《예수의 생애》(Das Leben Jesus)란 책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든가가 아니라 니체가 바울처럼 말에서 떨어지는 사건이 군복무 중에 우연히 발생한다.
이집트와 중동의 수많은 문화재를 전리품으로 약탈해 프랑스로 가져온 나폴레옹 1세 이후 프로이센이나 독일군이 파리에 입성한 것은 히틀러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프로이센인들은 프랑스인들처럼 고급정보를 얻을 수 있는 역사적 상황이 없었다.
니체가 이집트 하토로신전 지하실 정보를 안 것이 아니라 조로아터교를 기독교의 모체로 본거다(만든거다).
니체의 목적은 기독교 파괴를 위한 개종이였다.
조로아스터교가 상당부분 기독교적 성격을 가지고있다는데서 착안한 우연이다.




신라의 다보탑이 신라에 온 사산조인들이 세운 조로아스터교(배화교) 상징물이라는 것을 니들만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https://www.google.com/search?q=%EB%8B%A4%EB%B3%B4%ED%83%91&sxsrf=AOaemvKTqRgFJITvBt5-Hm5Ef3PoGKwBYg:1632478739356&source=lnms&tbm=isch&sa=X&ved=2ahUKEwin6_KasZfzAhWHO5QKHSEjAXgQ_AUoAXoECAEQAw&biw=1920&bih=937&dpr=1







선덕여왕의 엄마가 "마야부인"이다.
석가모니의 엄마 이름과 동일하다.
신라뿐 아니라 한반도 역사에서 유일한 이름이다.
선덕여왕(진덕여왕) 손이 무름 아래까지 내려오는 석굴암 석가모니라는 뜻이니까.
선덕여왕은 신라인이 아니라 서역인이라는 뜻이니까.
여자가 어떻게 석가모니가 될 수 있냐고 역사로 따져묻는 남자 사관들(역사를 기록하는 관리)만 모른다.

선덕여왕 = Turandot(사산조 여왕)

Luciano Pavarotti sings "Nessun dorma" from Turandot (The Three Tenors in Concert 1994)
https://www.youtube.com/watch?v=cWc7vYjg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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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굴 안기부에서 무궁화놀이 1억원은 언제 입금주능겨? ;D ;D ;D ;D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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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통장에 1억원 + 이자(9억)까지 안들어올 시 김진팔 소원대로 災冥이가 웃을 수 있다는 걸 명심해라.